현장에서 조용히 시작된 실험들
기업의 AX가 대부분 경영진의 지시와 예산 배정에서 출발하는 것과 달리, 공공 부문에서는 별도의 조직이나 예산 없이 현장 실무자 개인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전남 광양시에서는 한 실무자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업무 계획과 예산 자료를 통합해 조회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고, 한글 공문서의 서식과 내용을 분리해 재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재기안 지원 도구도 함께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광양시는 행정안전부의 AI 챔피언 교육 선발에서 20건을 배출하며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전국 1위를 기록했습니다.
경기 성남시에서는 약 30분이 걸리던 SNS 게시물 작성 업무를 3분 수준으로 단축한 자동화 도구가 개발되었으며, 공사 설계가 끝난 뒤 필요한 여러 건의 공문을 한 번에 자동 생성하는 도구도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서울시에서는 검색 증강 생성 방식을 기반으로 한 AX 통합관리 시스템을 자체 구축해 외부 개발 용역 비용을 최소 5천만 원 절감한 사례도 확인됩니다.
이러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지침이 아니라, 실무자가 자신의 반복 업무에서 느낀 비효율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소속 부서나 지자체의 규모와 무관하게, 구체적인 불편함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실무자일수록 실질적인 개선 도구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장의 움직임에 발맞춰 행정안전부는 AI 챔피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공공행정 현장에서의 AI 활용을 검증하고 실무형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기본 역량 습득부터 업무 적용, 고도화된 문제 해결까지 단계별 인증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생성형 AI 활용법은 물론 데이터 분석, 업무 자동화, 이른바 바이브 코딩, AI 서비스 기획, 개념 검증 구현에 이르는 실무 교육 과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편 정부는 공무원이 현장에서 겪는 수작업과 반복 업무를 직접 개선할 수 있도록 AI 정부 실험실이라는 기반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인터넷망 환경에서 민간 클라우드와 AI 코딩 도구를 활용해 시범적으로 운영되며, 개발 산출물은 공공 깃랩을 통해 통합 관리되어 다른 부처와 지방정부로 확산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향후 2027년부터는 정부 업무망 환경으로 범위를 확대해 내부 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며, 우수 사례에 참여한 공무원에게는 실질적인 포상도 제공될 예정입니다.
이는 현장의 자발적인 실험이 개인의 성과로 그치지 않고, 조직 전체의 자산으로 흡수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데이터라는 벽: 공공 AX가 더딜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 부문의 AX는 민간에 비해 구조적으로 더딜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데이터에 있습니다. 민간 기업은 상대적으로 통일된 시스템 안에서 데이터를 관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공공 부문은 부서와 기관 단위로 데이터가 나뉘어 있고 형식도 제각각인 비정형 데이터가 많아 정리와 표준화 자체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공공기관의 데이터베이스 표준화 지침을 지속적으로 개정하는 한편, 기관 간 칸막이 행정을 해소하기 위한 데이터 공유 의무화 정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도적 정비만으로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기는 어렵습니다. 데이터를 관리하는 기관이 모든 책임을 지는 반면, 그 데이터를 활용해 성과를 내는 것은 다른 기관인 구조에서는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공유할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책임과 성과의 불일치는 개별 기관의 노력만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국가 차원의 조정이 필요한 거버넌스 문제에 가깝습니다.
순환보직이라는 딜레마
공공 조직 특유의 순환보직 제도 역시 AX 확산에 있어 고려해야 할 구조적 변수입니다. 일정 주기로 담당자가 바뀌는 인사 구조에서는 특정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한 사람에게 오래 축적되기 어렵고, 인수인계 과정에서 앞서 구축된 데이터 체계나 자동화 도구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는 개인의 역량 문제라기보다는 제도 설계에서 비롯되는 구조적 특성이며, 데이터와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AX의 특성과는 상충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 부문의 AX가 지속 가능하려면 특정 개인이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지식과 시스템이 축적되고 전수될 수 있는 별도의 장치가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효율화의 목적은 감원이 아니라 숨 쉴 틈을 만드는 것
민간 기업의 AX가 대체로 수익성과 생산성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면, 공공 부문에서 언급되는 효율화의 맥락은 이와 다소 결이 다릅니다. 공공 조직에서 인력 배분은 휴직이나 개인 사정 등으로 인해 부서별로 균등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특정 부서에 업무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도 흔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를 통한 효율화는 조직 규모를 줄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구성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접근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하려면 현행 성과 측정 체계에 대한 재검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민간 기업처럼 이윤 창출을 핵심 지표로 삼기 어려운 공공 조직의 특성상, AI 활용을 통한 개선이 기존의 평가 체계 안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구성원들이 굳이 새로운 도구를 배우고 적용할 유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결국 데이터 정비와 마찬가지로,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고 보상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재설계가 병행되어야 확산의 동력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문화의 확산이 다음 과제다
기업의 AX는 하나의 조직, 하나의 시스템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개선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 공공 부문의 AX는 범위 자체가 원리적으로 국가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지닙니다. 하나의 지자체나 부처에서 만든 도구와 경험이 다른 기관으로 얼마나 원활하게 전파되는지가 전체 공공 부문의 AX 수준을 좌우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특정 지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 못지않게, 서로의 시행착오와 성과를 공유하고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합니다.
결국 공공 부문의 AX는 현장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는 상향식 혁신과, 데이터 거버넌스 정비 및 성과 체계 재설계와 같은 하향식 제도 개선이 함께 맞물릴 때 비로소 개별 성공 사례를 넘어 구조적인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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