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을 하다 보면 비슷한 품질의 제품인데도 유독 특정 브랜드만 주목받는 현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로고가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고, 광고를 크게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그 브랜드를 선택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디자인을 세련되게 바꾸고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도 고객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합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브랜딩의 거장 마티뉴 마이어가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한 가지 원칙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주체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입니다
마티뉴 마이어는 명확하게 주장합니다. 브랜드는 회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디자인 업계에서는 적잖은 반발이 있었습니다. 로고도, 슬로건도, 광고도 브랜드가 아니라면 디자이너는 대체 무엇을 만드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실제로 성공한 브랜드들을 분석해보니 모두 이 원칙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브랜딩을 논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브랜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머릿속에서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브랜딩 하면 로고나 CI 같은 시각적 요소를 먼저 떠올리는 이유는 브랜딩이 원래 그런 것이어서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브랜딩을 로고와 CI로 취급하던 시대를 오래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시대가 저물어가는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는 중입니다.
브랜드에 대한 네 가지 흔한 착각
첫 번째 착각은 로고에 관한 것입니다. 로고는 브랜드가 아닙니다. 로고는 브랜드를 나타내는 상징, 즉 브랜드를 대신 보여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아무리 로고를 세련되게 바꾸어도 그 자체가 브랜드를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로고는 브랜드의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일 뿐, 브랜드 그 자체는 아닌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제품 역시 브랜드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산다고 말할 때, 사실은 그 브랜드가 만든 특정 제품 하나를 구매하는 것이지 브랜드라는 추상적인 무언가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신제품 하나만 잘 만들면 브랜드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큰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세 번째는 약속에 대한 착각입니다. 흔히 브랜드를 기업이 고객에게 하는 약속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브랜드가 결과적으로 약속처럼 작동하기는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브랜드의 본질은 아닙니다. 약속은 브랜드가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할 뿐, 브랜드 자체를 정의하지는 못합니다.
네 번째로 광고 업계에서 자주 쓰는 정의가 있습니다. 브랜드는 기업이 고객에게 주는 모든 인상의 총합이라는 것입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정의는 인상을 많이 만드는 것이 목적일 때나 유용합니다. 정작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어렵습니다.
진짜 브랜드는 고객의 직감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브랜드는 무엇일까요? 브랜드는 결과물입니다. 고객이 어떤 제품, 서비스, 회사에 대해 갖는 직감입니다. 그 직감은 회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머리와 마음속에 존재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똑같이 생긴 흰색 티셔츠 두 장이 있습니다. 한 장은 동네 시장 좌판에 걸려 있고, 다른 한 장은 유명 편집숍 매대 위에 정갈하게 개어져 있습니다. 옷감도 재봉도 똑같은데 사람들은 편집숍에 있는 티셔츠에 훨씬 큰 값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은 티셔츠 자체가 아니라 그 티셔츠를 둘러싼 맥락과, 그 맥락이 사람들 머릿속에 만들어낸 직감입니다. 바로 그것이 브랜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고객마다 그 직감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 수만큼 존재하는 여러 버전의 브랜드를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그 여러 버전이 대체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모여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브랜딩은 준비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많은 대표와 디자이너가 착각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브랜딩을 우리가 하는 행위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로고를 만들고 슬로건을 짓고 광고를 돌리고, 이 정도 하면 브랜딩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브랜딩을 위한 준비 작업일 뿐입니다. 진짜 브랜드는 그다음 고객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입니다. 준비만 해놓고 결과가 안 나온다고 답답해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겪어본 상황이 아닐까요?
이 정의가 무서운 이유가 있습니다. 브랜드에 영향을 주는 것이 로고나 광고뿐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상세 페이지의 문구, 고객 응대 멘트, 포장 상태, 심지어 전화를 받는 직원의 말투까지 고객이 우리와 마주치는 모든 순간이 브랜드를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따라서 브랜딩은 디자인 팀이나 마케팅 팀만의 일이 아니라 사실상 회사 전체의 일입니다. 재무 팀이 예산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도 결국 브랜드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에 영향을 줍니다.
일용품에도 브랜드는 작동합니다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냥 필요해서 문구용품 하나 산 것인데 그것도 브랜드 때문이냐는 의문입니다. 정말 급하게 필요해서 사는 일용품의 경우에는 가장 싸고 가장 빠르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이긴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이 보입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물건인데도 유독 사람들이 특정 브랜드 제품을 집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완전한 필수품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곳까지 브랜드가 이미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번 경험하고 있습니다.

실전에 적용하는 세 가지 단계
그렇다면 이 정의를 실제로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일관된 시각 언어를 정하는 것입니다. 로고, 색상, 폰트, 톤앤매너를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입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기업이 어느 정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가 진짜 중요합니다. 고객이 우리와 마주치는 모든 접점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것입니다. 상세 페이지, SNS, 상담, 포장, 심지어 계좌 이체 문구까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우리가 만들고 싶은 인상과 다른 톤으로 튀는 순간, 고객의 머릿속에서 브랜드가 흐릿해집니다.
세 번째 단계는 그 모든 접점에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반복해서 담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을 넘어서 우리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가 계속 드러나야 합니다. 물론 이 세 단계는 말은 쉬워도 실제로 다 챙기려면 품이 정말 많이 듭니다. 그리고 이것을 한다고 당장 매출이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을 갖고 있으면 최소한 그냥 로고나 예쁘게 바꿔볼까 같은 얕은 결정은 덜하게 됩니다. 브랜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머릿속에서 결과로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모든 결정은 고객이 우리를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브랜딩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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